부산은 인구 350만 명의 우리나라 최대 국제 항만 물류 해양도시이자 개방과 진취적 기상이 넘치는 부울경 중핵도시로 현대사에 자리매김 되어 왔다. 특히 6·25전쟁 중 임시수도가 되면서 부산의 시대가 시작됐다. 일제시대 이전에는 한적한 포구에 불과한 동천 주변지역에서 현재도 대표적인 대기업집단인 삼성과 LG를 비롯해 대선주조, 동명목재, 대우버스, 대상(미원), 동양고무, 삼화고무, 진양화학 등이 성장해 국내 굴지의 기업이 됐다.
부산 경제가 활력을 잃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말부터였다. 전국 대비 부산지역 총생산규모를 보면 1970년대 중반 9%, 1985년 8.2%인 것이 2011년에는 5.2%까지 떨어졌다. 수출 비중은 1970년 26.3%, 1980년 18.2%에서 2016년 2.84%까지 추락했다.
부산 경제의 추락은 어디에서 시작됐나. 경제 성장은 필수적으로 도시화를 수반하는데 부산은 1960, 70년대 신발과 합판산업을 중심으로 압축 성장했다. 하지만 1963년 직할시 승격 당시 사상 지역만 편입해 공업 및 주택용지가 부족했다. 이후 1980년대부터 동천 지역에 모여 있던 기업들이 사상으로 이전하고, 나중에는 사상에서 시외로, 전국으로 빠져나갔다. 사상공단이 1974년 완공되면서 많은 기업이 이곳으로 이전하였지만 기업 수용에는 한계가 있었다.
부산을 떠난 기업들은 대부분 제조업이었으며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먼저 부산을 떠났다. 1977년 미원 중기가 창원으로 이전한 것을 계기로 많은 기업이 부산을 떠났다. 럭키금성 계열사의 경우 충청북도 청주로 이전하였고 조선견직은 경기도 양주, 거화는 경기도 평택으로 이전했다. 여기에다 부산에 본점을 둔 삼화고무, 동명목재, 국제상사 등 대기업들이 박정희와 전두환 신군부 등의 폭압으로 해체됐다.
산업 구조적으로 보면 부산은 1970년대 초반에 시작된 중화학 공업화 흐름에 동참하지 못했다. 합판, 신발, 섬유에 계속 집중했고 부가가치가 높은 새로운 산업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노태우 정권 시작과 함께 활발해진 북방 외교로 인천항이 주목받는 서해안 시대가 열리고 지식 정보 사회의 진전에 따른 수도권 집중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부산은 더욱 위축되고 신발, 섬유, 합판 산업을 이을 주축 산업을 발전시키지 못해 전국의 경제 중심에서 멀어져 갔다.
그렇다면 부산의 침체를 극복할 묘안은 없는가. 1995년 광역시 승격 때 강서구와 기장군이 편입되었지만 향후 김해, 양산을 추가 편입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공장부지와 주택용지 확보 및 세수 증대를 통해 지방재정자립도 46%에 불과한 열악한 재정을 개선하고 소비혁명 시대에 걸맞은 신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부산 경제는 부울경 동남경제권을 묶어 고민하고 육성해야 해답을 구할 수 있다. 부산을 떠난 대기업이 전부 돌아올 수는 없겠지만 부산이 육성하는 핵심 전략 산업인 항만 물류, 기계 부품, 관광 컨벤션, 영상· IT와 미래 지향성을 갖는 금융, 실버, 의료, 디자인 등의 산업에 종사하는 기업군의 부산 본사 유치와 단지 조성에 관련 기업과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들이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세계경제포럼 회장인 클라우스 슈밥은 ‘오늘날은 작은 물고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빠른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벤처기업과 스타트업 육성이 가능한 기업 생태계 조성을 서둘러야 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선도하는 대학, 연구소, 중소기업이 연계된 첨단산업단지를 도시 내에 체계적으로 만들어 다가오는 경제 무역 전쟁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필요하면 도심 내에 있는 개금 가야 범천 철도부지를 역외로 이전하고 벤처산업과 공유경제, 중소기업 연구소 단지로 개발하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부산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있는 기업과 좋은 대학과 연구소, 우수한 병원이 있다면 굳이 역외로 가지 않아도 된다. 국토균형 발전 전략을 추진했던 참여정부를 계승하는 문재인 정부는 수도권 경제 집중을 막고 지방 경제를 획기적으로 진작하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길 바란다.
부울경 지역을 국가경제전략특구로 지정해 수도권 경제 중심축에 대응하는 동남권 경제중심축을 건설하길 기대한다.
글, 박희정/부산의미래를준비하는 사람들 대표